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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푸르스름하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그런지 촘촘하게 박힌 별무리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다행히 주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정초와 일출, 그리고 바다 세 가지는 사람을 모을 수밖에 없는 요건이긴 했지만, 구석 중의 구석에 박혀 있는 해수욕장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싶었다. 이설은 별이 총총 박힌 낯익은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몇 번이나 봐 온 풍경이다. 마음 한 쪽이 술렁거리는 게 바다가 반가워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설은 그저 다시 보지 않겠다 다짐한 하늘 아래서 가만히 바닷바람을 들이마실 뿐이었다.
 
이설은 코와 입술, 그리고 목을 조이고 있던 목도리를 조심스럽게 풀어 내렸다. 일출을 보러 가자며 이른 시간에 깨운 그가 차에서 내리기 전 직접 둘러 준 것이었다. 보들보들한 면이 손바닥을 간질이고 은은하게 배어 있던 향수 냄새가 코 끝으로 스몄다. 두툼한 목도리를 손에 쥔 이설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가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힐 때는 목을 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어떤 날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생각을, 다른 날에는 날붙이로 손목이든 어디든 몸 한 구석을 베는 자신을 그려 보았다. 끝없이 저를 죽이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다가도 시간이 되면 방송국으로, 스튜디오로 가서, 무대에 올라서 방긋방긋 웃어 댈 수밖에 없었다. 매끈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꼬리에 매달린 건 거대한 죄책감이었지만,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고 수고했다며 등을 두드려 주는 이들은 그런 것따위 알지 못했다.
 
우울이란 지독한 놈은 이설을 끝없는 환상 속에 가두었다. 우습게도 그 상상의 결말은 항상 같았다. 이설이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자신을 기묘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차갑게 식어 가는 '그녀'의 곁엔 검은 그림자들이 오물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놈들은 거칠게 일렁거렸다. 아마 채이설의 삶이 끝나 가는 것에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었을 테다.
 
그래서 이설은 차라리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제게 들러붙은 그림자들마저 그녀를 찾을 수 없도록 깊은 물속에 잠기고 싶었다. 한껏 다가섰다가 채 손에 쥐기도 전에 멀어져 버리는 파도에, 위협적인 물살과 달리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을 수면 아래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저를 향해 밑으로, 밑으로 잠겨들어 가 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 거대한 물살의 일부가 되어 보고 싶었다. 아니, 해를 삼키고 달을 뱉는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품으로 떨어지는 해와 함께 잠수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이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또 알 수 없는 향수의 대상이기도 했다. 사실 바다를 사랑하는 걸까? 그녀는 모래사장에 레이스처럼 둘린 하얀 포말을 따라 천천히 발을 옮겼다. 싸르르 싸르르, 파도가 급작스럽게 밀어닥쳤다가 몸을 물렸다. 사랑이라는 건 그 사람의 일부가 제 것이 될 수 있도록 기꺼이 마음의 방을 내주는 것이라던데, 그럼 바다는 이설을 사랑하는 걸까?
 
이설은 몇 걸음을 걷다 말고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저 먼 곳에서부터 불어닥친 짠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훑으며 지나갔다. 겨울 바다 냄새가 한껏 담긴 탓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차가웠다. 아롱아롱 흐려진 시야로,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홀로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한 눈에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조그만 모래성처럼 앉아 있는 건 정주희, 채이설이었다. 차르르 파도 소리가 흩어졌다. 문득 그녀는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였다.
 
그래,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설이 흐린 눈을 들어 넓게 펼쳐진 망망대해를 보았다. 젖은 땅을 막 밟으려는 찰나.
 
왕왕!
"자, 잠깐만!"

 

 
송화와 뭉게가 조그만 실루엣을 그대로 통과해 용맹하게 뛰어왔다. 모래바람이 일 정도로 뛰어 대는 두 강아지들의 털이 마구잡이로 휘날렸다. 바닷바람을 얼마나 맞았다고, 풍성한 털은 그새 뻣뻣해진 것만 같았다. 평소 자주 다니던 운동장보다 몇 배는 더 큰 모래밭에 잔뜩 신이 난 모양이었다. 앙증맞은 얼굴엔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고, 벌어진 입 사이로 분홍색 혀가 빼꼼 빠져나와 바람에 휘날렸다. 줄을 놓쳤는지 허둥거리던 세진 역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먼저 도착한 송화가 이설의 발치에 드러누웠다. 보드라운 모래에 등과 엉덩이를 비비며 이리저리 뒹굴거렸다. 드러난 배는 어쩐지 조금 젖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 쪼그려 앉은 이설이 양손으로 송화의 몸을 쓸어내리며 놀리듯 말했다.

 

 

"송화야, 너 여기서 씻고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이게 다 뭐야."
"헉, 얘네, 바닷물에 잠깐 들어갔다가 그대로, 모래 밟았어."

 

 

바동거리는 뭉게를 안고 뛰어온 세진이 헥헥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두 녀석들의 발은 모래로 떡이 져 있었다. 소리 없이 경악한 이설이 손으로나마 몸을 털어 주기 시작했다. 이 작은 모래 괴물들을 차에 태워 숙소로 데려갈 생각을 하자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뭉게와 송화는 엉덩이가 떨어져 나갈 듯 꼬리를 흔들며 해맑게 웃어 댔다. 세진 역시 옆에 쪼그려 앉아 뭉게의 몸을 털어 주었다. 그런 그의 겉옷에도 모래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꼭 함께 모래장난을 하고 온 것처럼 말이다.
평소에 자다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흐트러진 모습은 잘 보여 주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바닷바람에 붕붕 뜨고 보시시하게 일어난 머리카락엔 손도 못 대고 허둥거리고 있었다. 찬바람을 계속 맞아서인지 뺨이나 코끝은 또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게, 꼭 음악 방송용 메이크업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아이러니한 비주얼에 웃음이 터져 버린 이설은 결국 어깨를 떨었다.
 

 

"왜, 왜 웃어…!"
 
 
갑작스러운 웃음에 당황한 세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리둥절해하는 게 귀여워 이설은 더 크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계속 뛰겠다며 몸부림치는 모래 괴물들을 놓아준 두 사람은 푸른 빛이 내려앉은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그때까지도 이설은 한쪽 손에 목도리를 들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턱과 목이 시리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제 손으로 직접 목도리를 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두려움에서 기인한 건지, 체념에서 기인한 감정인지 판단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걸었다.
 

 

"추운데 목도리는 왜 풀었어. 답답했어?"
 
 
보폭을 맞추며 걷던 세진이 물어 왔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는 연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이설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빠가 다시 매 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한 번 풀어 봤어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세진은 뚱한 표정이 되었다. 이설의 손에 목줄 두 개를 쥐여 준 그는 '감기 걸린다고 했잖아...'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목도리를 꼼꼼히 매어 주었다. 크게 두 바퀴를 두르고, 턱 앞에서 매듭을 지었다. 보드라운 털이 언 뺨을 스쳤고, 찬 공기를 머금었던 숨이 다시금 따뜻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이설은 알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선 이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를. 그 다정이 저를 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었다. 두 강아지들이, 배세진이 제게로 달려오기 전까지 목도리가 제 숨을 앗아 갈 목줄처럼 느껴졌는데 말이다. 목도리는 그저 목도리일 뿐이었다. 제 머릿속을 메웠던 어둠이 썰물에 실려 쓸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세진의 볼을 살살 쓰다듬어 보았다. 갑작스러운 터치에 그가 놀란 게 빤히 보였지만 이설은 부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놀라 토끼눈을 뜬 그는 분명 저보다 연상이었는데도 꼭 놀려 주고만 싶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져 오기 시작했다. 자동 리드줄에 의지해 멀리 탐험을 나갔던 강아지들은 결국 세진의 옆구리에 달랑 들려 이쪽으로 돌아왔다. 뭉게가 묻혀 놓았던 모래를 그래도 얼추 털었는지 세진의 아우터 앞판은 조금 깨끗해져 있었다. 그래도 미처 떼지 못한 게 곳곳에 달라붙어 있어서, 이설은 직접 그의 옷을 탁탁 털어 주었다. 세진은 두 녀석들의 목줄을 쥔 채로 서서 이설의 손길을 받고만 있었다. 왠지 평상시 그와 제 역할이 바뀐 것 같아 이설은 몰래 웃었다.
 
 
"다 됐어요."
 

 

세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꼼꼼히 확인한 이설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손을 털었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세진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설아, 손."
"모래 다 털었는데? 봐 봐요."

 

 
의아해하던 이설은 두 손바닥이 하늘을 보도록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세진은 목줄을 제 손목에 단단히 걸고는, 내밀어진 두 손을 힘주어 잡았다. 분명 똑같이 추위에 곱고 빨갛게 얼어 버린 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뜨겁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소금기 어린 매서운 바닷바람에 손등까지 발개졌는데도 꼭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 기묘했다.
 
한참 말없이 이설의 손을 꼬옥 쥐고 있던 세진이 한쪽 손을 들어 제 겉옷 안으로 넣었다. 재킷 안주머니를 더듬거리던 그는,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고는 조심조심 이설의 왼손 약지에 끼워 주었다. 타오르는 해를 받아 따뜻하게 빛나는 반지였다. 그리고 얼마나 소중히 품고 있었던 건지, 실제로는 반지는 따끈따끈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시체처럼 얼어 있던 손가락 말단에서부터 서서히 훈기가 퍼지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말을 잃은 이설은 제 손에 반지를 끼우고 있는 세진의 얼굴만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손한 번 떨지 않고 느리게, 하지만 그만큼 신중하게 반지를 끼우는 세진은 입술을 꼭 물고 있었다. 이설은 그의 이런 얼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실수하기 싫어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장난기 한 점 담겨 있지 않은, 그래서 납덩이처럼 무겁고 진중한 표정.
 
반지가 손가락 뿌리에 안착했다. 어디 하나 헐겁거나 과하게 조이는 것 없이 완벽히 들어맞는 사이즈였다. 반지가 끼워진 손을 한참 보던 세진은, 담담한 어조로 고백했다.
 
 
"… 결혼할까?"
"..."
 
 
평상시였다면 고작 손을 잡는 정도의 스킨십만으로도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고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귀엽게 말도 더듬었을 텐데. 그랬다면 아마 저는 쑥맥처럼 구는 애인이 제자리에서 팔짝 뛸 때까지 놀려 댔을 테다.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도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세진은 지금 용기를 내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이설은 제 왼손 약지에 끼워진 이 반지 하나가 너무나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물론 그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버거운 게 절대 아니었다. 물 밑으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던 자신을 뭍으로 꺼내 줄 수 있을 만한, 딱 그만큼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잠시 대답을 미룬 이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닷가를 다시 둘러보았다. 고작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두컴컴했던 하늘은 어느새 밝게 깼고, 쏴아아 쏴아아 빗소리처럼 흩어지던 파도는 우렁찬 박수가 되었다. 총총 박혀 있던 별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자리를 복슬복슬한 구름과 따스한 햇볕이 메웠다. 그리고…
 
이설은 세진에게로 반 발자국 다가갔다. 그리고 언제나 저를 향해 열려 있는 품에 미련없이 기대었다.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감싸안아 주는 연인의 어깨는 단단했고, 가슴은 포근했다. 두꺼운 겉옷에 가려져 있는데도 자신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설은 실감했다. 제 등 뒤에 들러붙어 있던 것들이 모조리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말이다.

 

 
"... 오빠."

 

 
쿵. 작게 코를 들이마신 이설이 입을 열었다. 아주 작은 부름이었는데도 세진은 용케 알아채고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어린 물기 정도는 가뿐히 모르는 척했다.
 
 
"나랑 잘 살 수 있겠어요?"
"뭐? 다, 당연하지! 나 못 미더워?"
 
 
얼토당토 않는 물음에 세진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장난인 걸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 주는 세진에 이설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슬쩍 훔쳐 준 세진은 그녀와 손을 맞잡았다. 어느새 녹은 두 사람의 손이 퍼즐처럼 딱 맞물렸다.
 
이설은 제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연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르고 있는 해를, 드디어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은 단언컨대 그녀의 삶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